동물 복지를 넘어 AI 복지까지…새로운 복지 논의의 현장을 가다

2월 초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센티언트 퓨처스’ 행사에서는 AI 연구자와 동물 복지 활동가들이 모여 AI가 미래의 동물 복지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과 윤리적 과제를 논의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AI가 감각을 지니고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상황까지 상정하며, 기술과 철학을 접목한 새로운 복지 논의를 모색했다.

2월 초 동물 복지 활동가들과 인공지능(AI) 연구자들이 샌프란시스코의 공동 작업 공간 ‘목스(Mox)’에 모였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이 공간에는 노란색과 붉은색 천막이 천장을 덮고 있었고 바닥에는 페르시아 카펫이 깔려 있었다. 화분 옆에는 모자이크 램프가 놓여 은은한 빛을 더했다.

공용 공간에서는 한 야생동물 보호 활동가가 앉아있던 참가자들을 향해 발표를 이어갔다. 독극물 없이 쥐 개체 수를 조절할 수 있는 피임 기술에 관한 내용이었다. ‘갑각류 방’에서는 10여 명이 원을 이루고 앉아 곤충의 지각 능력이 챗봇의 내적 상태를 이해하는 데 어떤 단서를 줄 수 있는지를 두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소 방’ 앞 책장에는 미국의 AI 안전 연구자이자 작가 엘리저 유드코스키(Eliezer Yudkowsky)의 저서《누군가 만들면, 모두가 죽는다(If Anyone Builds It, Everyone Dies)》가 여러 권 꽂혀 있었는데, AI가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담긴 책이다.

이 행사는 동물 복지의 미래가 AI에 달려 있다고 보는 단체 ‘센티언트 퓨처스(Sentient Futures)’가 주최했다. 참석자들 상당수는 베이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른바 ‘범용인공지능(AGI) 확신론자’들이다. 인간이 수행하는 대부분의 인지 작업에서 경쟁할 수 있는 강력한 AI, 즉 AGI가 머지않아 등장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다. 이들은 이러한 전제가 현실이 된다면 사회의 가장 난해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인 동물의 고통 문제를 해결하는 데 AI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물론 현재의 AI가 인간 수준이나 그 이상의 지능에 도달할 수 있을지를 두고는 여전히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치열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그런 수준에 이르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럼에도 일부 참석자들은 장기적으로 인간이 아니라 AI 시스템이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미래를 상정한다. 그리고 그때 동물의 복지는 우리가 AI에 동물의 삶을 어떤 가치로 학습시켰느냐에 달려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콘스턴스 리(Constance Li) 센티언트 퓨처스 창립자는 “AI는 판을 완전히 바꿔놓을 만큼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AI가 맡게 된다면 그것이 동물을 비롯한 다른 감각 있는 존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여기서 감각 있는 존재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를 뜻한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AI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이전부터 동물 복지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사람들이다. 다만 이들은 보호소에 기부금을 내는 방식보다는 보다 구조적인 해법을 선호한다. 동물 세포를 배양해 만든 배양육을 확산시켜 공장식 축산을 줄이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베이 지역의 동물 복지 운동은 ‘효과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효과적 이타주의란 개인이 세상에 미치는 선한 영향을 최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자선 철학으로, 실제로 이번 행사 참석자 중 상당수도 효과적 이타주의자들의 자금 지원을 받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철학은 겉으로 보면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선을 최대화한다’는 목표 자체는 명확한 해답이 없는 복잡한 문제이기도 하다. 실제로 효과적 이타주의는 여러 결론을 두고 비판을 받아왔다. 더 많은 기부를 위해 착취적 산업에서 일하는 선택을 정당화하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의 잠재적 고통을 줄이는 문제를 현재의 피해보다 우선시하는 접근이 대표적이다.

비판자들은 이들이 인종차별이나 경제적 착취와 같은 구조적 문제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사회적 약자가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데 대해 갖고 있는 통찰 역시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철저한 공리주의적 접근은 동물 복지 문제에서도 다소 이례적인 결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부 효과적 이타주의자들은 개별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고통의 정도는 제한적일 수 있지만, 개체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곤충이나 새우의 복지를 개선하는 데 상당한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이 흐름은 AI와의 접점을 어떻게 설정할지를 두고 새로운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 비영리단체 컴패션 인 머신러닝(Compassion in Machine Learning)의 재스민 브라질렉(Jasmine Brazilek) 공동 창립자는 자신이 개발한 평가 지표를 소개했다. LLM이 동물 복지 문제를 어떻게 추론하는지를 측정하기 위한 기준이다. 클라우드 보안 엔지니어 출신인 그녀는 현재 멕시코 라파스에서 소수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제한된 예산으로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브라질렉은 현장에 모인 AI 연구자들에게 동물 복지에 대한 고려를 반영한 문서로 모델을 학습시킬 것을 제안했다. 그녀는 “미래의 초지능 시스템이 인간이 아닌 존재의 이익까지 함께 고려하길 바란다”며 “AI가 인간의 가장 좋은 가치를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세계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큰손’의 등장

최근 몇 년 사이 기술 기반 접근을 내세워온 동물 복지 운동은 적지 않은 한계를 드러냈다. 공장식 축산에 의존한 식습관을 바꾸겠다는 구상은 기대만큼 빠르게 확산되지 못했고, 식물성 대체육 기업 비욘드 미트(Beyond Meat)의 주가 급락과 미국 일부 주의 배양육 판매 금지 법안 통과 등 부정적인 흐름도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AI는 새로운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행사 참석자들 역시 AI가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릴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다만 이들의 목표는 투자 유치를 극대화하는 데 있지 않다.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데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부는 클로드 코드(Claude Code)나 맞춤형 에이전트를 활용해 코딩과 행정 업무를 자동화하는 방안을 논의했고, 또 다른 참석자들은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해 분자생물학 연구를 지원하는 알파폴드(AlphaFold) 같은 과학 AI 도구를 활용하면 더 저렴한 배양육 생산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행사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기술 자체보다 자금의 흐름이었다. 가까운 시일 내 동물 복지 단체로 대규모 자금이 유입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관련 논의가 이어졌다. 기존처럼 소수의 거액 기부자에게 의존하는 구조가 아니라 AI 기업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새로운 기부 주체로 부상할 것이라는 기대가 이어졌다.

코이피션트 기빙(Coefficient Giving)의 농장동물복지 기금을 총괄하는 루이스 볼라드(Lewis Bollard)는 “농장 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비영리단체, 비건 식단 확산, 배양육 지지 활동 등을 포함한 농장동물 복지 운동의 재원 상당수가 기술 업계 종사자들로부터 나온다”고 설명했다. 코이피션트 기빙은 과거 오픈 필란트로피(Open Philanthropy)로 알려졌던 자선 기금으로, 더스틴 모스코비츠(Dustin Moskovitz)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와 그의 배우자 캐리 투나(Cari Tuna)의 지원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은 효과적 이타주의를 지지하는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억만장자 후원자로 꼽힌다.

볼라드는 “게이츠 재단이나 포드 재단 같은 전통적인 자선 단체들은 이 분야를 사실상 외면해 왔다”며 “오히려 기술 업계가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여온 영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AI 연구자들이 새로운 대형 기부자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챗봇 클로드를 개발한 앤트로픽 소속 인력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앤트로픽 창립진은 효과적 이타주의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며, 회사 차원의 기부 매칭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월 기업가치가 3,800억 달러(약 570조 원)에 이르면서 직원들에게 보유 지분을 현금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이 자금 일부가 자선 단체로 유입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이 같은 자금 유입 가능성은 행사 내내 논의의 중심에 있었다. 참가자들은 ‘절지동물 방’에 모여 화이트보드에 대규모 예산과 프로젝트 구상을 적어 내려갔다. 일부는 1억 달러(약 1,500억 원) 규모의 동물 복지 법안을 밀어붙이기 위한 정치 자금 조직을 구성해 의회에 인력을 파견하고 관련 입법을 추진하자는 제안을 내놓았고, 또 다른 이들은 비건을 홍보하는 AI 기반 틱톡 콘텐츠 제작 회사를 설립하자는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AI 기업 내부에 동물 복지 활동가를 배치하자는 구상도 이어졌다.

양식 새우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인도적 도축 방식을 확산시키는 등의 활동을 하는 단체 ‘새우 복지 프로젝트(Shrimp Welfare Project)’의 공동 창립자 아론 보디(Aaron Boddy)는 “새로운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더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AI에도 ‘복지’가 필요할까

센티언트 퓨처스 행사에서 논의는 동물 복지에만 머물지 않았다. 일부 참석자들은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나아갔다. 언젠가 AI가 감각을 지니고 고통을 느낄 수 있게 될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만약 그런 상황이 현실이 됐음에도 이를 외면한다면, 그 자체로 도덕적 재앙이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다만 AI의 ‘고통’을 다루는 연구는 쉽지 않다. 인간과 동물이 왜 감각을 지니는지조차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행사에서는 효과적 이타주의의 지원을 받는 철학자들과 일부 학자들이 이 문제를 놓고 논의를 이어갔다. 

일부는 LLM을 활용해 다른 LLM이 감각을 지녔는지를 평가하려는 연구를 소개했고, 토론 세션에서는 감각을 지닌 AI를 ‘클랭커(clanker)’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이는 영화 <스타워즈>에서 로봇을 비하할 때 쓰이는 표현으로, 이런 언어가 새로운 형태의 지능을 대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따져본 것이다. 콘스턴스 리는 “소든 돼지든 AI든, 행복이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자체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동물 복지 논의에 AI의 감각 가능성을 끌어오는 시도는 완전히 낯선 접근은 아니다. 기계의 감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동물의 감각을 다뤄온 연구에서 개념과 방법론을 상당 부분 차용해왔다. 무척추동물도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보고, 동시에 AI가 머지않아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시스템 역시 고통을 느낄 수 있을지 고민하는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확장이라는 설명이다.

싱크탱크 리싱크 프라이어리티스(Rethink Priorities)에서 AI의 의식을 연구하는 데릭 실러(Derek Shiller)는 과거 동물 보호 단체 휴메인 리그(Humane League)에서 웹 개발자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는 “동물 복지 활동가들은 기존의 통념에 도전하는 데 익숙하다”며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터무니없다고 여기는 AI 복지 문제에도 더 열린 태도를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논의는 베이 지역을 벗어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콘스턴스 리는 “2023년 AI 감각 관련 학회에 참석한 뒤 기존 농장동물 복지 단체의 이름을 지난해 ‘센티언트 퓨처스’로 바꿨을 때 다른 활동가들로부터 적지 않은 반발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이들이 AI는 결코 감각을 가질 수 없다고 확신했고, AI 복지에 시간이나 자원을 쓰는 것은 낭비라는 반응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국제 비영리단체 컴패션 인 월드 파밍(Compassion in World Farming)의 매트 도밍게즈(Matt Dominguez) 대표 역시 비슷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지금 단계에서 가설적인 문제에 자금을 투입하기 위해 농장동물 복지나 기존 동물 복지 영역에서 자원이 빠져나가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도밍게즈는 연민의 범위가 확장될 수 있다고 본다. 무척추동물의 고통 문제를 계기로 새우 복지 프로젝트와 협력해 온 그는 “어떤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 그 관심이 점차 다른 존재로 확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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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년 03월 25일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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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일: 2026년 03월 25일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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