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로픽 겨냥한 미 국방부의 ‘문화 전쟁’ 전략이 역효과 낳았다
먼저 트윗을 올려 갈등을 유도한 후 나중에 법률 대응을 하는 식의 전략은 연방법원 판사의 심기를 거슬렀고, 판사는 3월 말 앤트로픽에 대한 미 정부의 제재 조치를 중단시켰다.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지방법원은 3월 26일 AI 기업 앤트로픽에 대한 미 국방부의 제재 조치를 일시적으로 중단시켰다. 국방부는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으로 지정하고 정부 기관에 해당 회사의 AI 사용 중단을 지시하는 조치를 시행해왔는데 이를 중단시킨 것이다. 한 달간 이어진 갈등은 이번 결정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지만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부에는 7일의 항소 기간이 주어졌고 앤트로픽은 공급망 위험 지정에 대해 별도의 두 번째 소송도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앤트로픽은 사실상 미 정부의 ‘기피 대상(persona non grata)’으로 남게 된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처음부터 명확했다. 바로 ‘정부가 협조하지 않는 기업을 어디까지 처벌할 수 있는가?’였다. 이 문제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AI 정책을 설계했던 전직 인사들을 포함해 이례적인 조합의 고위급 인사들이 앤트로픽의 입장을 지지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의 리타 린(Rita Lin) 판사는 43페이지 분량의 의견서를 통해 “본질적으로는 계약 분쟁에 불과한 사안이 이렇게까지 과열될 필요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사건이 과열된 이유는 정부가 이러한 분쟁을 처리하는 기존 절차를 무시했고 이후 법정에서의 입장과 모순되는 당국자들의 소셜미디어 게시물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 국방부는 ‘문화 전쟁(주로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등 서로 다른 집단 간의 사회적 견해와 가치관 충돌)’을 원했던 셈이다(몇 시간 뒤 실제로 시작된 이란 전쟁과는 별개로).
법원 문서에 따르면 미 정부는 2025년 대부분 기간 동안 앤트로픽의 AI ‘클로드’를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사용했다. 한편 앤트로픽은 ‘안전을 중시하는 AI 기업’이라는 이미지와 국방 계약을 동시에 유지해야 하는 아슬아슬한 브랜드 전략을 펼쳤다. 국방부 직원들은 미국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를 통해 정부 전용 사용 정책에 동의해야 클로드를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에 대해 앤트로픽 공동창업자인 재러드 캐플런(Jared Kaplan) CSO는 “해당 정책은 미국인에 대한 대규모 감시와 치명적 자율 무기 전쟁을 금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다만 법원에 제출된 진술서에는 이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앤트로픽과 직접 계약을 추진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판사가 분노한 부분은 정부와 앤트로픽 간의 이러한 갈등이 공개되었을 때 그 갈등이 단순한 관계 단절을 넘어 ‘처벌’에 가까운 성격을 띠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먼저 트윗을 올리고 나중에 법적 대응을 하는 방식이었다.
2월 27일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플랫폼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에 올린 글에서 앤트로픽을 ‘좌파 미치광이들’이라고 언급하며 모든 연방 기관에 앤트로픽의 AI 사용 중단을 지시했다. 이어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 국방장관도 “펜타곤(미 국방부)이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으로 지정하도록 지시하겠다”고 밝히며 이를 거들었다.
이 같은 조치를 취하려면 장관이 특정한 절차를 수행해야 하는데 판사는 헤그세스 장관이 해당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예를 들어 의회 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는 “더 완화된 조치들을 검토했지만 실행이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으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또한 정부는 앤트로픽이 ‘킬 스위치(kill switch, 원격 중단 기능)’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공급망 위험 지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이후 정부 측 변호인들은 이에 대한 증거가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고 판사는 밝혔다.
헤그세스 장관의 게시물에는 “미국 군과 거래하는 모든 계약업체, 공급업체, 또는 파트너는 앤트로픽과 상업적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정부 측 변호인들은 장관에게 그러한 권한이 없다는 점을 인정했고 “해당 발언에 법적 효력이 전혀 없다”는 판사의 판단에도 동의했다.
이 같은 공격적인 게시물들은 판사가 “앤트로픽이 수정헌법 제1조(표현의 자유)에 따른 권리가 침해됐다고 주장한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판사는 관련 게시물을 인용하며 “정부가 앤트로픽의 ‘이념’과 ‘표현’, 그리고 그러한 신념을 타협하지 않으려는 ‘오만함’을 이유로 공개적으로 처벌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공급망 위험으로 지정하는 것은 사실상 앤트로픽을 정부의 ‘사보타주(고의적 방해 행위자)’로 규정하는 것과 다름없지만, 판사는 이를 뒷받침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판사는 3월 26일 해당 지정을 중단하는 명령을 내리며 미 국방부가 이를 집행하지 못하게 했고, 정부가 헤그세스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한 조치를 이행하는 것도 금지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AI 정책을 담당했지만 앤트로픽을 지지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딘 볼(Dean Ball) 연구원은 판결에 대해 “정부에 치명적인 판결이며, 정부의 조치가 위법하고 위헌이라는 앤트로픽 측 주장 대부분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이 결정에 대해 항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워싱턴 DC에서 제기된 앤트로픽의 별도 소송 역시 유사한 주장을 담고 있다. 다만 이 소송은 공급망 위험을 규율하는 법률의 다른 조항을 근거로 삼고 있다.
법원 문서들은 비교적 명확한 패턴을 보여준다. 정부 고위 인사들과 대통령의 공개적인 발언들이 이와 같은 계약 분쟁에서 법이 요구하는 절차와 전혀 일치하지 않았고, 정부 측 변호인들이 이후 소셜미디어에서의 강도 높은 비난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를 만들어내야 했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와 백악관 수뇌부는 공급망 위험 지정과 같은 가장 강력한 조치를 추진할 경우 법적 분쟁이 발생할 것을 알고 있었다. 앤트로픽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공급망 위험 지정을 제출하기 며칠 전인 2월 27일 이에 맞서 싸우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를 강행한 것을 보면 최소한 이란 전쟁 초기 5일 동안 군사 공격을 수행하는 동시에 앤트로픽을 정부의 ‘사보타주’로 입증할 증거를 모으면서 고위 지도부가 상당히 비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정부는 이보다 더 간단한 방법으로도 앤트로픽과의 관계를 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설령 앤트로픽이 최종적으로 승소하더라도 정부는 앤트로픽을 정부 사업에서 배제할 다른 수단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미 국방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방산업체들은 공급망 위험으로 지정되지 않더라도 앤트로픽과 협력할 이유가 거의 없어졌다.
법과 AI 연구소(Institute for Law and AI)의 찰리 불록(Charlie Bullock) 선임연구원은 “정부가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결국 정부가 앤트로픽을 강하게 처벌하려는 의지가 어느 정도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보면 트럼프 행정부는 AI를 둘러싼 ‘문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최고위급의 시간과 관심을 투입하고 있다. 동시에 클로드는 정부 운영에 매우 중요한 존재로 보이며 트럼프 대통령조차 미 국방부가 이를 완전히 사용 중단하는 데 6개월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백악관은 주요 AI 기업들에 정치적 충성과 이념적 일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적어도 현재까지 앤트로픽 사건은 정부의 영향력에도 한계가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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