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자만 원합니다”…AI가 흔드는 숙련의 사다리

생성형 AI가 당장 대규모 실업을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 부족하지만, 신입·주니어 직무를 빠르게 대체하며 청년층의 첫 일자리와 경력 성장 기반을 흔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는 AI를 이해·활용하고 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역량이 핵심 경쟁력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인공지능(AI)이 당장 대규모 실업 사태를 일으키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는 아직 없다. 선진국의 전체 고용 규모도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고, 최근 발표된 연구들 역시 AI가 노동시장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는 아직 없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노동시장 내부에서는 다른 변화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사회 초년생들이 경력을 시작하던 자리들이 하나둘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신입 채용 시장에서 두드러진다. 스탠퍼드 디지털 경제 연구소(Stanford Digital Economy Lab)가 지난해 11월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생성형 AI 확산 이후 AI의 영향을 크게 받는 직군에서 22~25세 청년층 고용이 1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경기 상황과 산업별 차이 등 다른 변수들을 반영한 뒤에도 같은 결과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 AI 기업 앤트로픽이 공개한 보고서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여주는 정황을 제시했다.

반면 같은 직군 안에서도 경력이 있는 노동자들의 고용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또 AI 영향이 적은 초급 직무 전반에서 고용 감소가 나타난 것도 아니었다. 감소세는 생성형 AI에 직접 노출된 신입·주니어 직군에 집중됐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 생성형 AI가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한 사람들이 경험을 쌓고 경력을 시작하던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특히 생성형 AI 활용이 활발한 분야일수록 이런 변화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고객지원 담당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정보시스템 관리자 등이 대표적이다.

사라진 신입 채용…AI가 바꾸는 노동시장

이제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을 교육하고 지원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교육기관 역시 AI가 결합된 노동시장 환경에 맞춰 방향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기업들이 경력 초기 인재를 채용하고 훈련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들 역시 AI 경험을 갖춘 장기 인력을 육성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결국 초기 경력의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이다. 학생들 또한 단순히 AI를 활용할 줄 아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그 기술을 각 분야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까지 익혀야 한다.

결국 우리는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초급 직무의 의미 자체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는 최근 대졸자 노동시장 전반이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2025년 4분기 기준 최근 대학 졸업자의 실업률이 5.6%까지 상승했다고 밝혔다. 대학 학위가 필요하지 않은 일자리에 종사하는 졸업자의 비율을 뜻하는 불완전 고용률 역시 42.5%까지 치솟으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물론 이런 흐름이 전적으로 AI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팬데믹 이후 채용 시장 자체가 크게 위축된 데다 청년층은 경기 둔화의 충격을 가장 먼저 받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다만 학교에서 노동시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이미 어려워진 상황에 AI가 추가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을 가능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이 통계 뒤에는 청년들이 실제로 겪는 깊은 좌절이 존재한다. 최근 졸업자들 사이에서는 단 한 번의 입사 제안을 받기까지 수백 곳에 지원서를 넣는 일이 더 이상 드문 풍경이 아니다. 길어지는 구직 과정 속에서 불안과 번아웃, 경제적 압박을 호소하는 청년층도 빠르게 늘고 있다. 만약 AI가 사회 초년생들이 처음 발을 디디던 일자리를 본격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한다면 그 여파는 단순한 취업난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경제적 독립은 늦어지고 결혼과 출산 같은 삶의 계획도 뒤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어렵게 내디딘 첫 사회 진출의 시도마저 계속해서 좌절되는 경험이 더 많은 청년들에게 반복될 수 있다.

무너지는 숙련의 사다리

초급 직무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일자리 수 때문만이 아니다. 그런 자리들이야말로 사회 전체의 훈련 시스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주니어 애널리스트는 현장에서 어떤 수치를 믿어야 하는지 배운다. 신입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실제 서비스 환경에서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무너지는지를 경험하며 익히고, 마케팅 신입사원들은 대시보드 숫자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실제 고객의 반응을 체득한다. 또 법률·재무 분야의 사회 초년생들 역시 규정과 판단, 마감 일정과 인간관계가 현실에서 어떻게 얽혀 돌아가는지를 실무 속에서 배워나간다.

하지만 한때 신입 인력을 성장시키던 과정이었던 초안 작성과 분류 작업, 코딩, 요약, 행정 지원 업무 등을 AI가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기업은 단기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지 몰라도 사회 전체는 장기적으로 숙련 인력을 길러낼 기반 자체를 잃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결책이 다시 젊은 세대에게 “코딩을 배워라”라고 말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정부 정책과 대학 정원 확대를 움직였던 이 구호는 코딩이 누구나 익혀 중산층 일자리로 이어질 수 있는 안정적이고 확장 가능한 기술이라는 믿음 위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전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AI가 가장 능숙하게 처리하는 영역이 바로 그런 종류의 업무이기 때문이다. 요구사항에 맞춰 코드를 작성하고, 익숙한 패턴을 반복하며, 예측 가능한 오류를 수정하는 일들은 과거 코딩 교육 열풍이 길러내려 했던 핵심 업무와 정확히 겹친다.

앞으로 더 중요해지는 역량은 AI 시스템이 수행한 작업을 감독하고 검토하는 능력이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이해하고, 그 결과가 타당한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대학과 지역 커뮤니티 칼리지, 직업교육 프로그램들도 AI 활용법과 데이터 해석, 프롬프트 기반 업무 방식, 결과 검증, 분야별 판단력 등을 일반 학위 과정 안에서 함께 가르쳐야 한다. 모든 졸업생은 AI 도구를 활용하고 결과물을 점검하며 시스템의 한계를 이해하고, 이를 인간의 전문성과 결합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이는 의료 분야처럼 상대적으로 AI 영향이 덜할 것으로 여겨지는 직종에 진출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거의 모든 직무에는 이미 AI가 강력한 생산성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 업무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초안 작성과 요약, 일정 관리, 리서치, 기초 데이터 작업, 반복적인 커뮤니케이션 업무 등이 대표적이다.

AI 활용 능력이 새로운 경쟁력

앞으로 청년 노동자들이 마주하게 될 경쟁은 단순한 인간 대 기계의 구도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AI를 활용할 줄 아는 동료와 그렇지 못한 동료 사이의 경쟁에 가까워질 것이다. 대부분의 청년 노동자들에게 현실적인 생존 전략은 AI를 피하는 데 있지 않다.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능력 위에 각 분야의 전문성과 맥락을 읽는 판단력, 인간관계 능력을 결합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학교 역시 학생들이 졸업 전에 실제 업무 환경 속에서 판단력을 기를 수 있도록 유급 산학협력 프로그램과 도제식 훈련, 기업 연계 프로젝트 등을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정부 역시 경력 초기 인재를 AI 기반 직무에 채용하고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세액공제와 임금 보조, 직무훈련 지원금 같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에는 이미 기업의 채용 확대나 투자 유치를 위해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제공하는 제도가 존재한다. 다만 이런 제도를 초기 경력 인력 육성과 AI 기반 업무 환경에 맞춰 설계한 사례는 아직 부족하다.

기업들도 단기적인 비용 절감 효과만을 기준으로 채용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청년 노동자의 가치는 단지 이번 분기에 처리하는 업무량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가치는 학습과 숙련 형성, 조직 내부의 경험 축적, 그리고 미래 생산성에 있다. 초급 인력을 채용하는 일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조직 안에 미래의 판단력을 축적하는 투자에 가깝다. 2030년대 후반 가장 경쟁력 있는 AI 기반 시니어 인력 역시 결국 오늘날의 주니어 세대에서 나오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학습 단계를 통째로 자동화해 버린 기업들은 당장의 수익성은 개선할 수 있을지 몰라도, 10년 뒤에는 자사 AI 업무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인력 자체가 사라지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곧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지금 거대한 전환기의 노동시장에 들어서고 있다. 이제 단순히 AI를 활용할 줄 아는 것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워지고 있다. 반대로 AI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전공 지식만 갖춘 인력 역시 빠르게 경쟁력을 잃고 있다. 앞으로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게 될 사람들은 두 영역을 함께 이해하는 인재들이다. 제조업 이해와 AI 활용 능력을 함께 갖춘 기계공학 전공자, 금융 서비스 지식에 AI 활용 역량까지 겸비한 소프트웨어 개발자 같은 인재들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이 글을 쓴 게오르기오스 페트로풀로스(Georgios Petropoulos)는 USC 마셜 경영대학원(USC Marshall School of Business) 조교수로, 정보기술이 혁신과 경쟁 정책,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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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년 05월 27일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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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일: 2026년 05월 27일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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