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호르무즈의 위기가 AI의 미래를 바꾼다

작전명 ‘에픽 퓨리(Operation Epic Fury)’로 시작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이 60일을 넘어섰다. 그 사이 세계는 단순한 유가 변동을 넘어 새로운 유형의 충격을 경험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데이터센터(대규모 서버를 […]

작전명 ‘에픽 퓨리(Operation Epic Fury)’로 시작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이 60일을 넘어섰다. 그 사이 세계는 단순한 유가 변동을 넘어 새로운 유형의 충격을 경험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데이터센터(대규모 서버를 통해 데이터를 저장·처리하는 핵심 디지털 인프라)가 직접 타격 대상이 됐고, AI 반도체 냉각에 필수적인 헬륨(극저온 유지에 쓰이는 산업용 가스) 가격은 단일 공격 이후 급등했다.

이 변화는 하나의 사실을 드러낸다. 세계 고대역폭메모리(HBM, AI 연산 속도를 높이기 위해 데이터 전송 대역폭을 극대화한 메모리)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국가들조차 에너지 공급망에서는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해상 운송의 약 25%, 액화천연가스(LNG, 장거리 운송을 위해 액체 상태로 만든 천연가스)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경로다. 거기에 AI의 전력·소재·데이터 인프라까지 걸려 있다. 과거의 전쟁이 물리적 영토의 쟁탈전이었다면, 지금의 전쟁은 전자·구리·분자의 공급망 자체를 전장으로 삼는다. 파키스탄의 중재로 휴전이 유지되고 있으나, 양측의 종전 협상은 깊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고 미군의 해상봉쇄는 계속되고 있다.

교착된 전쟁, 네 가지 시나리오

지금의 위기를 기존의 지정학 충돌과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위험하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은 에너지 패권, AI 기술 주권, 글로벌 공급망 주도권이 복합적으로 얽힌 이른바 ‘지경학적 폭풍’이다. 경제학자와 전략가들이 ‘심층적 불확실성(Deep Uncertainty)’이라 부르는 상태, 즉 과거의 통계나 확률 모델로는 미래의 양상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극도의 불투명함이 현실이 되었다.

이 전쟁의 향후 전개는 네 갈래로 읽힌다. 국제 사회의 중재로 핵·미사일·호르무즈 개방에 일괄 합의하는 ‘외교적 긴장 완화’가 첫 번째다. 그러나 미국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 권리 자체를 부정하고, 이란은 동결 자산 반환과 미군 해상봉쇄 해제 없이는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는다. 사실 현재 가장 현실적인 경로는 두 번째, ‘관리된 충돌’이다. 이란이 ‘우호국’ 선박에만 통행을 허용하고 일부 국가에는 통행료를 받는 방식으로 해협을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구조다. 미국은 이란 항구를 겨냥한 해군봉쇄로 맞서 ‘이중 봉쇄’ 구도를 형성했다. 이 교착이 장기화될수록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 프리미엄은 고착화된다.

세 번째는 협상이 완전히 결렬되고 호르무즈 봉쇄가 무기한으로 전환되는 ‘중동 지역 확전’이다. 이 경우 아시아 국가들의 에너지 비축량이 수주 내 임계치에 도달하면서 글로벌 경기침체가 불가피해진다. 레바논 전선이 재점화되고 후티 반군이 홍해 봉쇄를 강화할 경우, 세계 에너지 해상 교역의 상당 부분이 동시에 차단되는 복합 위기로 비화할 수 있다. 대규모 지상군 투입으로 글로벌 질서 자체가 흔들리는 ‘지상전 확대 및 체제 변화’가 네 번째로, 확률은 낮지만 파급력은 가장 크다.

이란의 핵 농축 권리, 호르무즈의 통행 주권, 미국 주도의 제재 해제라는 세 가지 구조적 쟁점 중 단 하나도 타협점이 보이지 않는 지금, 설령 총성이 다시 멎는다 해도 진정한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다보스포럼은 이 위기의 여파, 즉 높아진 보험 비용, 경색된 소재 공급망, 달라진 지정학적 리스크 재평가가 수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AI의 세 가지 급소: 전력, 소재, 데이터센터

이번 전쟁이 드러낸 가장 중요한 구조적 취약성은 AI의 물리적 기반이 예상보다 훨씬 좁은 지리적 목에 걸려 있다는 사실이다.

첫 번째 급소는 전력이다. 세계 LNG 공급의 약 20%가 호르무즈를 통과하고, LNG는 전 세계 전력의 상당 부분을 생산하는 연료다. 대만은 LNG가 전력 생산의 약 50%를 담당하며 전략적 비축량이 2주에 불과하다. TSMC는 대만 전체 전력의 약 10%를 소비한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의 약 80%를 점유하고 있는데, 한국은 중동에서 LNG의 약 20%, 석유의 약 70%를 수입한다. 호르무즈 봉쇄는 단순한 에너지 가격 충격이 아니라 AI 컴퓨팅 자원 자체의 지리적 재편을 강제하고 있다.

두 번째 급소는 소재다. 카타르는 세계 헬륨 공급의 약 3분의 1을 담당한다. 헬륨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대체 불가능한 냉각제로, 이란의 드론이 카타르 라스라판 복합단지를 타격한 이후 헬륨 가격은 급등했다. 여기에 한국이 90% 이상을 이스라엘에서 조달하는 브롬(반도체 필수 소재), 세계 해상 황(硫) 무역의 약 절반이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황(구리 생산의 근간)까지 더하면, 반도체 공급망의 소재 리스크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문제가 됐다.

세 번째 급소는 데이터센터다. 이번 전쟁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데이터센터가 전쟁의 표적이 된 사례를 만들었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드론 공격으로 UAE와 바레인에 위치한 아마존 데이터센터 시설이 피격됐다. 각국 정부가 민감한 데이터를 자국 내에 두길 원하지만, 분쟁 지역 인근에서는 오히려 그 자산이 표적이 된다는 전략적 딜레마, 즉 ‘주권 데이터의 역설’이 새로운 경영 리스크로 부상했다. 이란 혁명수비대와 연계된 매체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해저 케이블 지도를 공개한 것은 디지털 인프라 자체를 향한 압박 카드였다. 팰컨(FALCON), AAE-1 등 최소 7개의 해저 케이블이 이 해협을 통과한다. 결국 AI의 다음 경쟁은 코드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전자·구리·분자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국가와 기업이 주도권을 쥔다.

전쟁의 문법이 바뀌었다: 미래 전장을 가르는 여섯 가지 변화

중동 전역에서 관찰되는 전황은 단순한 무기 체계의 변화가 아니라, 전쟁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전쟁이 개별 무기의 성능과 병력 규모에 의해 결정됐다면, 지금의 전장은 서로 다른 기술이 실시간으로 연결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기술의 결합 방식에서 나타난다. 현대 전장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그리고 저궤도 위성망(지구 저고도에서 데이터를 전달하는 통신 인프라)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된 구조다. 이 시스템은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장 곳곳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통합하고, 이를 바탕으로 판단과 실행까지 연결한다. 스페이스X의 군사용 위성 네트워크나 팔란티어의 데이터 통합 시스템은 이러한 흐름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초연결성은 새로운 취약성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위성 신호를 교란해 무기의 위치를 왜곡하는 스푸핑(Spoofing, GPS 신호를 조작하는 기술)이나, 디지털 공급망을 직접 공격하는 사이버 해킹은 기존의 물리적 전력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전장을 마비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부상했다. 연결이 많아질수록 공격 표면도 함께 넓어진다는 역설이다.

무기 체계 역시 질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인간의 개입 없이 표적을 탐지하고 공격까지 수행하는 치명적 자율 무기(LAWs, Lethal Autonomous Weapons)가 실전에 투입되면서, 전투의 의사결정 속도는 인간의 개입을 기다리지 않는 수준으로 이동하고 있다. 동시에 극초음속 활공체(HGV, 음속의 5배 이상 속도로 비행하며 궤도를 변경할 수 있는 무기)는 기존 방어 체계를 무력화하고 있으며, 이를 대응하기 위한 레이저 기반 지향성 에너지 무기가 새로운 방어 수단으로 등장하고 있다. 공격과 방어의 균형 자체가 다시 설정되는 과정이다.

이 변화는 전투의 범위를 물리적 공간 밖으로 확장시킨다. 소셜 미디어와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여론과 심리를 조작하는 인지전(Cognitive Warfare)은 이제 전장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핵심 작전 영역이 됐다. 물리적 타격이 없어도 시장, 정치, 사회를 흔들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주목해야 할 변화는 에이전틱 전쟁의 등장이다. 기능 단위로 설계된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상황을 해석하고, 목표를 설정하며, 실행까지 이어가는 구조—에이전틱 워페어(Agentic Warfare)—는 인간 중심의 지휘 체계를 점진적으로 대체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라 의사결정 권한의 이동을 의미한다.

전략적 차원에서도 기존 전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첨단 기술이 전쟁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끝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실제 전장은 고가의 무기가 빠르게 소모되는 장기 소모전으로 전개되고 있다. 단기간에 승부가 결정되기보다는, 누가 더 오래 버틸 수 있는지가 승패를 좌우하는 구조다. 동시에 장거리 정밀 타격 능력은 후방의 ‘안전지대’라는 개념을 사실상 제거했다. 지리적 거리로 보호되는 공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변화는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된다. 전쟁의 핵심은 더 강한 무기를 갖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고 복원할 수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 무기, 작전, 전략, 조직, 그리고 가치관까지—전쟁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동시에 재편되고 있다.

기업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지난 1월 다보스포럼이 발표한 ‘2026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는 무역·금융·기술 자체가 전략적 무기로 전락하는 ‘경쟁의 시대’의 도래를 경고했다. ‘지경학적 충돌’이 세계를 위협하는 압도적 1위 리스크로 꼽혔으며, 각국이 공동 위기 대응보다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악순환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경고는 지금 중동에서 잔인한 현실로 입증되고 있다.

기업이 대응해야 할 핵심 과제는 분명하다. 필자는 이를 ‘S.H.I.E.L.D.’라는 여섯 가지 전략 축으로 정리한다. 첫째는 디지털 공급망 보안(S, Security of Digital Supply Chain)이다. AI 기반 초연결 환경에서 스푸핑과 사이버 해킹은 가장 치명적인 비대칭 위협이다. 자사 내부는 물론 파트너사와 연결된 공급망 전체에 걸쳐 ‘제로 트러스트(Zero-Trust)’ 보안 체계가 전제 조건이 됐다. 둘째는 핵심 자산의 물리적 분산(H, Hardware Decentralization)이다. 헬륨·브롬·황처럼 특정 지역에 집중된 소재 공급망부터 데이터센터와 생산 기지까지, 단 한 번의 타격이나 봉쇄로 전체 인프라가 무너지지 않는 이중화 구조가 필수적이다.

셋째는 정보 및 인지전 방어(I, Information & Cognitive Defense)다. 딥페이크와 허위 정보가 기업의 평판과 금융 리스크를 직접 유발하는 시대, 시장과 미디어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대응하는 체계는 경영 방어선의 전제 조건이다. 넷째는 기업 인프라 가상화(E, Enterprise Virtualization)다. 데이터센터가 전쟁의 표적이 되는 현실에서 클라우드와 가상화 기술을 통해 물리적 시설이 파괴되더라도 서비스가 중단되지 않는 IT 환경을 선제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다섯째는 개방형 혁신의 수용(L, Leverage Open Innovation)이다. 민간 테크 기업의 혁신이 국가 안보를 선도하는 지금, 자사 기술이 안보·방위 자산과 융합될 수 있는 이중 용도(Dual-use) 가능성도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마지막 여섯째는 능동적 회복탄력성(D, Dynamic Resilience)이다. 아람코가 극한의 타격을 받고도 열흘 만에 정상화할 수 있었던 것은, 위기가 닥친 날이 아니라 훨씬 전부터 호르무즈 봉쇄를 ‘상수’로 두고 대비 설계를 해뒀기 때문이다. S.H.I.E.L.D.의 여섯 축은 결국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총체적 회복탄력성을 경영의 최우선 지표로 내재화하는 것이다.

이번 전쟁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기업은 호르무즈가 닫혀도, 데이터센터가 피격되어도, 헬륨 공급이 끊겨도 내일 문을 열 수 있는가. 회복탄력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직시하고 단호하게 대비하는 냉정한 안목, 그것이 이 심층적 불확실성의 시대를 통과하는 유일한 조건이다.

이 글을 쓴 류종기 교수는  IBM Global Technology Services 사업개발임원과 Deloitte Risk Advisory 디렉터를 역임했다. 현재 EY한영 리스크 컨설팅 리더이고 울산과학기술원(UNIST) 공과대학 지구환경도시건설학과 겸임교수와 경기대 AI컴퓨터공학부 산학협력겸직교수로 인공지능과 기업 리스크, 기후변화와 재난관리 리질리언스를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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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년 05월 05일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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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일: 2026년 05월 05일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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