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돌파구 vs 재앙의 씨앗…자연과 반대 구조 ‘생명체’ 논쟁 가열
자연계 분자 구조를 ‘거울처럼 반대로 뒤집은’ 방식으로 만든 ‘거울상 생명체’가 신약 개발의 혁신적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기존 면역 체계가 이를 탐지하지 못할 수 있는 ‘생물학적 사각지대’가 형성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인류에 치명적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과학계의 찬반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2019년 2월, 버지니아 북부의 한 컨퍼런스센터에 약 30명의 합성생물학자와 윤리학자가 모였다. 이들의 목적은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지원할 만한, 위험 부담은 크지만 혁신적이고 매력적인 연구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것이었다. 회의가 끝날 무렵, 이들은 유력한 후보 하나를 선정했다. 바로 ‘거울상 박테리아(mirror bacteria)’를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특정한 방향성을 가진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 DNA는 일반적으로 오른나선 구조를 이루고,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은 대부분 왼손형(L-형)이다. 이러한 분자들은 서로 구조적으로 대칭이지만 겹쳐질 수 없는 성질을 가지는데, 과학자들은 이를 카이랄성(chirality)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왼손과 오른손처럼 모양은 비슷하지만 서로 완전히 일치하지 않고 방향성이 정해져 있는 성질이다.
거울상 박테리아는 이러한 카이랄성을 자연계에서 나타나는 방향과 정반대로 뒤집어 모든 생체 분자를 거울처럼 반대 형태로 합성한 생명체를 말한다. 만약 이 박테리아가 실험실에서 실제로 만들어진다면 외형적인 구조나 세포의 조직 방식은 일반 박테리아와 거의 유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부를 이루는 단백질, 당류, 지질 등 핵심 생물학적 분자들은 자연계 생명체의 것과는 반대 방향의 거울상 형태로 구성된다.
연구자들은 이 전망에 흥분했다. “모두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2019년 워크숍에 참석한 합성 세포 개발의 선구자인 J.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의 합성생물학자 존 글래스(John Glass)는 이렇게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는 “세포를 설계하고 구축하는 방법이나 지구 생명체의 기원에 대해 잠재적으로 새로운 사실을 알려줄 수 있는, 믿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과제”였다. 연구진은 의학 분야에서도 엄청난 잠재력을 확인했다. 거울상 미생물은 생물학적 공장으로 설계되어 새로운 종류의 약물 개발 기반이 될 수 있는 거울상 분자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이러한 치료제는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분자와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원치 않는 면역 반응을 유발하지 않을 수 있다.
회의 후 생물학자들은 NSF에 도구 개발과 실험 진행에 필요한 자금 지원을 권고했고, 전 세계적으로 이 연구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중국 국가자연과학재단(National Natural Science Foundation of China)과 독일 연방 연구·기술·우주부(Federal Ministry of Research, Technology, and Space)도 거울상 생물학 분야의 주요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했다.
그런데 5년 후인 2024년이 되자, 당시 NSF 회의에 참여했던 많은 연구자가 입장을 바꿨다. 그들은 최악의 경우 거울상 유기체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위협하는 재앙적 사건을 촉발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포식자가 없는 환경에서 번식하며 사람, 식물, 동물의 면역 방어 체계를 회피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미네소타대학 합성생물학의 케이트 아다말라(Kate Adamala)는 “세상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걸 더 일찍 알아챘더라면 좋았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2년 동안 연구자들은 경고 신호를 보냈다. 그들은 2024년 12월 〈사이언스(Science)〉지에 관련 논문을 게재했으며, 실현 가능성과 위험성을 다룬 299페이지 분량의 기술 보고서도 함께 발표했다. 그들은 논문을 집필하고 패널 토론을 주최했으며, 위험을 이해하고 대응하기 위한 연구를 지원하는 광범위한 기금을 모은 비영리 단체인 ‘거울상 생물학 대화 기금(Mirror Biology Dialogues Fund)’을 공동 설립했다. 이 문제는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으며, 화학자와 합성 생물학자뿐만 아니라 생명윤리학자와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서도 논의를 촉발시켰다.
그러나 잠재적 위험이 실질적 위험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았다. 거울상 박테리아를 비롯한 거울상 생명체를 만들려면 엄청나게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 것이다. 또한 과학계가 이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거울상 생명체를 만드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조차 의심하고 있다.
중국 웨스트레이크대학에서 분자생물학을 연구하는 팅 주(Ting Zhu)는 “거울상 생명체의 창조는 현대 과학의 범위를 훨씬 벗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연구실은 거울상 펩타이드와 기타 분자 합성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경고를 제기하는 연구자들은 거울상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있는 경로, 심지어 여러 경로까지 제시하면서 어떤 종류의 거울상 생물학 연구가 여전히 안전한지 파악하기 위해선 시급히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그들이 지난 수십 년간 여러 차례 마주쳤지만 결과가 엇갈렸던 과학적 방법론 내에서 명확한 위치를 찾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있음을 의미한다. 과학자들은 실제로 자신의 연구에서 세상의 종말의 그림자를 발견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거울상 생명체
프랑스 화학자이자 미생물학자인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는 생물학적 분자에 내재된 ‘손잡이성(handedness)’을 최초로 인식한 인물이다. ‘카이랄성’이라고도 불리는 손잡이성은 오른손과 왼손처럼 모양은 같지만 거울에 비쳤을 때만 겹쳐지는 대칭 구조를 뜻한다.
19세기 후반 파스퇴르는 모든 생명체를 “우주적 비대칭성의 산물”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만약 이러한 카이랄성 성분들을 반대되는 거울상 구조로 교체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곰곰이 생각했다.
과학자들은 이제 카이랄성이 생명 그 자체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지만, 왜 그런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인간의 경우 단백질을 구성하는 20종의 ‘표준’ 아미노산 중 19종은 카이랄성을 띠며, 모두 같은 방향의 구조를 가진다(예외적으로 글리신은 대칭 구조를 가진다). 단백질의 기능은 그 형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대부분 카이랄성 구조를 통해 다른 분자와 상호작용한다. 세포 표면의 거의 모든 수용체 역시 카이랄성을 가진 구조다. 감염이 발생하면 면역계의 감시 역할을 하는 세포들은 카이랄성을 이용해 항원(면역 반응을 유발하는 물질)을 인식하고 결합하며, 이후 항체 생성 과정을 시작한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연구자들은 카이랄성을 반전시키는 아이디어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1992년 한 연구팀은 최초의 거울상 단백질을 합성했다고 보고했다. 이는 곧바로 위험성에 대한 첫 번째 경고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퍼듀대학 화학자들은 만약 거울상 생명체가 실험실에서 탈출한다면 ‘정상적인’ 생명체의 어떤 공격에도 면역성을 가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분야의 초기 연구를 다룬 2010년 ‘와이어드’ 기사 역시 그러한 미생물이 광합성 능력을 갖게 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체를 파괴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스탠퍼드대학에서 감염병과 미생물학을 모두 다루며 장내 및 구강 미생물군 연구를 이끌어온 데이비드 렐먼(David Relman)은 당시 합성생물학계가 이러한 위협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거울상 미생물이라는 개념이 단백질 연구의 실제 진전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그는 “20년 전만 해도 이는 거의 순수하게 이론적인 논의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제 연구 환경이 달라졌다.
과학자들은 세포가 단백질을 만들고 스스로 복제하는 데 사용하는 분자 기계의 거울상을 만드는 데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러한 분자 기계를 이루는 구성 요소에는 단백질 제조법을 암호화하는 DNA, 유전 물질의 복제를 돕는 DNA 중합효소, 그리고 단백질 공장인 리보솜(ribosome)으로 제조법을 전달하는 RNA 등이 포함된다. 만약 연구자들이 스스로 복제하는 거울상 리보솜을 만들 수 있다면, 거울상 단백질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치료제 개발을 위한 생물학적 제조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요소가 자가 복제와 대사 기능을 갖춘 합성 세포 안에 결합된다면 거울상 미생물이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2019년 버지니아 북부에 모인 합성생물학자들은 이 기술이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지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설령 위협을 감지했더라도 과학을 발전시키려는 강력한 욕구로 인해 그것을 간과했을 가능성이 있다. 글래스에 따르면 현재는 거울상 생명체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 과학자들이 서로의 연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화학자들은 합성생물학자들이 자연과 같은 카이랄성을 가진 세포를 처음부터 만드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는 걸 몰랐고, 생물학자들은 화학자들이 점점 더 큰 거울상 고분자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글래스는 “우리가 서로 분리된 채 연구하는 경향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이전 연구에서 제기된 면역 체계 관련 우려를 누구도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019년 회의를 회상하며 그는 “그 자리에 면역학자나 감염병 전문가는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 과학자들 역시 자신들의 회의가 열리던 시기와 비슷한 무렵 거울상 생명체를 둘러싼 또 다른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런데 그것은 발견만큼이나 위험에 초점을 맞춘, 보다 어두운 성격의 논의였다. 2016년경부터 ‘오픈 필란트로피(Open Philanthropy)’라는 단체의 연구자들은 재앙적 생물학적 위험에 관한 연구 자료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이 단체는 2025년 ‘코이피션트 기빙(Coefficient Giving)’으로 개명했으며,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가장 큰 이익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에 자금을 집중해야 한다는 ‘효과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와 철학적 기반을 공유한다. 이 개념은 겉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비판자들은 ‘효과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장기적인 해결책에 치우쳐 사회적 불평등이나 구조적 문제를 간과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거울상 생명체는 오픈 필란트로피가 외부 과학자들에게 생물보안 위험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 과정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2019년 이 단체는 MIT 미디어랩의 ‘스컬프팅 에볼루션(Sculpting Evolution)’ 그룹을 이끄는 케빈 에스벨트(Kevin Esvelt)의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거울상 생명체를 포함한 생물보안 문제가 포함됐다. 에스벨트는 거울상 생명체가 실제로 우려할 만한 대상인지 판단하기 위해 관련 연구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2013년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해 유전자 드라이브(gene drive)를 개발한 선구자로 주목받았다. 유전자 드라이브는 생물체에 도입된 유전적 변화를 전체 개체군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연구자들은 이 기술을 이용해 모기가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기생충을 억제하도록 만들어 인간에게 질병을 전파할 가능성을 낮추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에스벨트는 이 기술을 개발한 직후 적절한 안전장치가 마련되고 말라리아 대응에 대한 활용이 충분히 검증되기 전까지는 상업적 이용에 반대했다. 그는 2016년 MIT 테크놀로지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실수하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험을 정말로 수행할 권리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현재 그는 미디어랩에서 지역적으로는 활용할 수 있으면서도 전 세계로 확산되지 않도록 통제 가능한 유전자 드라이브를 안전하게 개발하는 연구를 이끌고 있다.
에스벨트는 한 번 작동하면 사람의 통제 없이 계속 유지되는 유전자 조작 기술이 초래할 수 있는 보안 위험에 대해 꾸준히 고민해 왔다. 그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거울상 생명체의 위협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의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생물의 성장 속도, 포식자와 먹이 관계와 미생물 간 상호작용, 그리고 면역학에 대해 이해가 깊어질수록, 만약 거울상 생명체가 자연계 생물의 선천적 방어 기제를 회피할 수 있다면 실험실을 벗어났을 때 통제할 수 없는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점점 커졌다고 그는 설명했다.
에스벨트는 설령 그러한 미생물의 초기 실험 버전이 환경이나 인체 내에서 생존하기에는 너무 취약하더라도 기존 기술을 활용해 더 강인한 새로운 버전을 유전자 조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결과가 무기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2019년에서 인류의 전멸로 이어질 수 있는 경로가 지나치게 직접적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는 거울상 생명체 연구와 관련된 모든 과학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었기 때문에 여러 전문가들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2022년 2월 어느 날 밤, 그는 워싱턴 DC 외곽의 한 식당에서 렐먼에게 자신의 우려를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에스벨트는 렐먼이 자신이 틀렸다고, 수년간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놓쳤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렐먼 역시 깊은 우려를 느꼈다.
확산되는 우려
렐먼은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해당 기술과 그에 따른 위험, 그리고 면역 체계와 환경에서 카이랄성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더 철저히 조사했다. 그는 자신의 우려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잘 아는 전문가들, 즉 생태학자, 미생물학자, 면역학자 등 각 분야의 권위자들과 상의했다.
우려는 점차 확산됐다. 렐먼은 시카고대학 화학자 잭 쇼스타크(Jack Szostak)를 포함한 여러 연구자들과 함께 거울상 생명체가 인류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지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자들 사이에는 미네소타대학의 아다말라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2019년 NSF의 지원을 받아 거울상 생명체 기술을 탐구하는 초기 연구에 참여했다.
아다말라 역시 위험이 실제적이라는 확신에 이르렀고, 왜 이를 더 일찍 깨닫지 못했는지에 대해 당혹감을 드러냈다. 그녀는 “화창한 어느 오후, 커피를 마시다가 세상이 곧 끝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그런 식도 아니었다”면서 “솔직히 말해서 그 위험을 처음 제기한 사람이 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2023년 말부터 2024년 초에 걸쳐 이러한 위험을 파악하는 작업은 점차 엄격한 과학적 검증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연구자들은 ‘거울상 세포가 만들어질 경우 실존적 위협이 될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하고, 이를 반박해보라고 전문가들에게 요청했다. 목표는 이 가설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피츠버그대학 미생물학자인 본 쿠퍼(Vaughn Cooper) 미국미생물학회(American Society for Microbiology) 차기 회장은 “우리가 틀렸다면 정말 좋겠다”고 말했다.
렐먼에 따르면 화학자와 생물학자들이 서로의 연구를 더 깊이 이해하고, 생명체의 방어 메커니즘에 대한 면역학적 지식을 결합해 나가면서 점차 퍼즐을 맞추듯 하나의 큰 그림을 보게 됐다. 그 결과, 막기 어려운 합성 생물학적 위협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2019년 NSF 회의에 참여하지 않았던 피츠버그대학 면역학자 티모시 핸드(Timothy Hand)는 2024년 거울상 생명체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그는 “포유류의 면역 체계는 어떤 형태의 분자에 대해서도 항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거울상인지 아닌지가 무슨 상관이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과정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그는 항체 생성보다 훨씬 이전 단계에서 연쇄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먼저 탐지 단계부터가 문제다. 면역 체계가 침입자를 식별하고 제거하는 데 사용하는 대식세포는 표면에 카이랄성을 인식하는 수용체를 가지고 있으며, 침입자에 결합하는 단백질 역시 카이랄 구조다. 이는 거울상 생명체가 체내에 침투하더라도 이를 제대로 인식하거나 방어하지 못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핸드는 “선천 면역 감지 기능의 부재는 숙주에게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2024년 초에는 글래스 역시 우려를 품게 됐다. 렐먼과 오픈 필란트로피의 구조생물학자 제임스 와그스태프(James Wagstaff)는 벤터 연구소를 방문해 글래스의 전문 분야인 합성 세포 기술을 활용해 거울상 생명체를 만들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글래스는 “처음에는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찬반 논거를 하나씩 검토해 나갔다. 글래스는 “논의가 이어질수록 점점 불안감이 커졌다”면서 “지난 20년 동안 제가 해온 연구가 이런 엄청난 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2024년 하반기가 되자 이러한 위험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학술지 〈사이언스〉에 글을 기고하는 연구자가 늘어났다. 렐먼은 백악관 정책 담당자들과 국가안보 관계자들에게 브리핑을 진행했으며, 연구진은 국립보건원(NIH)과 NSF 관계자들과도 만났다. 글래스는 “우리는 유엔, 영국 정부, 싱가포르 정부, 브라질의 과학 지원 기관들에 브리핑했다”면서 “중국 정부와도 간접적으로 소통했다”고 말했다. 누구도 갑작스럽게 상황을 맞닥뜨리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란 게 이유였다.
약 1년 반이 지난 현재 이러한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유네스코는 거울상 생명체 세포를 만드는 일을 전 세계적으로 당분간 멈추자고 권고했으며, 알프레드 P. 슬론 재단(Alfred P. Sloan Foundation)을 비롯한 주요 과학 지원 자선단체들은 거울상 미생물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핵과학자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는 최신 ‘지구 종말 시계(Doomsday Clock)’ 보고서에서 거울상 생명체 문제를 주요 고려 사항으로 언급했으며, 올해 3월 유엔 사무총장 과학자문위원회 역시 관련 위험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특히 최근 거울상 분자 합성 기술의 발전이 거울상 미생물 제작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거울상 생명체의 위험을 평가하는 비영리 단체 MBDF를 이끄는 과학자 제임스 스미스(James Smith)는 “현재까지의 증거를 고려할 때, 지금 단계에서 거울상 생명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MBDF는 코이피션트 기빙, 슬론 재단 등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제임스는 앞으로의 과제로, 과학자들이 정책 입안자와 생명윤리학자들과 협력해 거울상 생명체 연구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그리고 그 규칙을 누가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계 설정
모두가 거울상 유기체가 존재론적 위협을 초래한다고 확신하는 것은 아니다. 거울상 미생물이 면역 체계나 더 넓은 환경에서 어떻게 작동할지를 예측하는 일은 실제 실험 없이는 검증하기 어렵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러한 종말론적 시나리오에 반박하며, 거울상 생명체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견해가 “위험을 과장한 시각”이라고 지적한다. 또 다른 연구자들은 글리칸(glycans)이라 불리는 탄수화물이 이미 좌·우회전형 모두로 존재하며, 병원체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면역 체계가 이 두 형태를 모두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들은 면역 체계와 거울상 분자 간 상호작용을 다루는 실험이 거울상 유기체의 위험을 더 명확히 이해하고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믿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어디까지 연구를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는 없다. 어떤 연구는 허용되고 어떤 연구는 금지되어야 하는가?
텍사스대학 오스틴 캠퍼스의 생명공학자이자 합성생물학자인 앤디 엘링턴(Andy Ellington)은 거울상 생명체가 가까운 시일 내에 실현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설령 실현되더라도 그것이 실제 위협이 될지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는 “인류에 해가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이 문제는 제 우선순위 목록에서 382번째 정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이 문제가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는 복잡한 사안이며, 논의가 계속되어야 한다”면서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상태에서 위험을 평가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어떤 연구를 허용하고 어떤 연구를 금지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한다.
미네소타대학의 아다말라와 일부 연구자들은 아미노산 사슬을 단백질로 전환하는 세포 내 공장인 리보솜을 중요한 경계선으로 본다. 리보솜은 자가 복제 생명체를 만드는 핵심 요소이며, 아다말라는 거울상 리보솜이 구축된다면 그 이후 자가 복제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비교적 단순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반면 중국 웨스트레이크대학의 주 등은 거울상 리보솜이 기존 화학적 방법보다 의학적으로 유용한 펩타이드와 단백질을 더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으므로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반박한다. 그는 이러한 기술과 ‘생명체 자체의 창조’ 사이에는 분명한 구분이 존재한다고 본다. 즉, 거울상 분자 생물학과 거울상 생명체는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거울상 분자뿐 아니라 비자연적 구성 요소를 포함한 다양한 합성 분자와 생명체가 건강상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위험 전반을 포괄하는 통합적인 지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확한 위험 수준이 불확실하더라도 에스벨트는 연구를 중단해야 한다는 확신이 이전보다 더 강해졌으며, 경우에 따라서 무기한 중단이 필요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거울상 생명체가 인류 전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가설에 대해 아직 누구도 충분히 검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위험의 존재 여부 자체보다, 어떤 특정 박테리아(어떤 유전자를 갖고,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면역계의 감시를 회피하는지)가 가장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식별하는 문제가 더 큰 불확실성”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인류의 미래 전체를 잃을 위험은 경제의 아주 작은 이익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우리는 그런 존재론적 위험을 가볍게 다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로서는 자율 규제 사례들이 거울상 생명체 연구에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미래에 대한 세 가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거울상 생명체는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고, 가능하더라도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혹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
과학자들은 불확실성과 두려움 속에서 스스로 연구를 제한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일부에게는 연구 중단이 시급한 조치로 보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과도한 제약으로 여겨진다. 분명한 것은 거울상 생명체를 둘러싼 논의가 과학자들로 하여금 현재의 연구뿐 아니라 그것이 향할 미래까지 재검토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이 글을 쓴 스티븐 오른스는 테네시주 내슈빌에 거주하는 과학 전문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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