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을 버리고 ‘치료제’를 남겼다…정치가 만든 모더나의 선택
미국 제약회사 모더나는 mRNA 기반 암 치료 기술을 ‘백신’ 대신 ‘개별 맞춤형 신항원 치료체’로 재정의하며 정치·규제 환경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용어 선택을 둘러싸고 과학적 설명과 환자 이해, 그리고 산업 전략 사이에 긴장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mRNA 백신으로 잘 알려진 미국 제약회사 모더나의 차세대 독감 및 신종 감염병 백신 개발 계획이 미국 내에서 백신 회의론이 확산하면서 제동이 걸리고 있다. 정부 지원 계약이 취소되는 등 비우호적인 규제 환경이 강화되면서 매사추세츠에 본사를 둔 이 바이오기업은 위기감까지 느끼고 있는 듯하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mRNA 기술을 정면으로 겨냥하며 관련 다수 프로젝트의 지원을 중단했는데, 여기에는 모더나의 조류독감 백신 개발 프로젝트도 포함됐다. 이로 인해 7억 7,600만 달러(약 1조 2,000억 원) 규모의 지원이 중단되자, 모더나는 올해 1월 감염병 백신 개발 프로그램 중 일부를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모더나의 또 다른 핵심 연구 분야가 주목받고 있다. 모더나는 다국적 제약사 머크와 협력해 mRNA 기술을 활용한 암 치료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 기술은 종종 ‘암 백신’으로 불리지만, 머크 대변인은 이에 대해 “백신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필자가 ‘백신’이라는 표현을 꺼내기도 전에 말을 끊으며 “개별 맞춤형 신항원 치료(individualized neoantigen therapy)”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기술의 작동 원리를 보면, 그것이 왜 ‘백신’으로도 불리는지 이해할 수 있다. 모더나는 환자의 암세포를 분석해 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가장 특이하고 비정상적인 분자들을 찾아낸다. 이 분자들은 일종의 표지처럼 작용하며 암세포가 정상 세포와 구별되도록 하는 단서가 된다. 이어 모더나는 해당 분자, 즉 ‘신항원’의 유전 정보를 바탕으로 mRNA를 설계해 주사 형태로 만든다. 이후 환자의 면역체계는 이 정보를 학습해 해당 표지자를 가진 세포를 발견하면 이를 제거하도록 반응하게 된다.
기술적 원리만 놓고 보면 코로나19 mRNA 백신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예방이 아니라 이미 암에 걸린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이 치료법은 이미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모더나와 머크는 이 치료법이 가장 치명적인 형태의 피부암 환자에서 수술 후 재발로 인한 사망 위험을 절반가량 줄였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모더나는 2023년 머크와 협력 이후 공식 문서에서 해당 기술을 더 이상 ‘암 백신’이라 부르지 않고 있다. 대신 ‘개별 맞춤형 신항원 치료’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회사 측은 이를 “프로그램의 목표를 보다 정확히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흐름은 바이오엔테크(BioNTech) 등 다른 mRNA 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 역시 ‘신항원 백신’ 대신 ‘mRNA 암 면역치료’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용어 변화의 배경에는 환자가 이미 암에 걸린 상태이므로 예방이 아닌 치료라는 논리가 자리한다. 동시에 미국 정치권에서 확산된 백신 불신과 공포로부터 기술 혁신을 분리하려는 전략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모더나 암 연구 프로그램 책임자 카일 홀렌은 지난해 보스턴에서 열린 BIO 2025 행사에서 “요즘 백신이라는 단어는 사실상 금기어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과학을 믿고 면역체계를 활용해 감염뿐 아니라 암과도 싸우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의료진이 이러한 ‘용어 선택’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종양내과 전문의 라이언 설리번은 용어 변화가 임상시험 참여 결정 과정에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백신이라는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가 나올 수 있지만, 동시에 우리는 가능한 한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토론토 프린세스 마거릿 암센터의 종양내과 전문의 릴리언 시우는 다른 견해를 보였다. 그녀는 “연구가 계속될 수 있다면 명칭 변경은 수용 가능하다”고 밝혔다.
홀렌은 모더나에 비판적인 일부 의사들이 기본적으로 백신 개념을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신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공중보건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에 기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고 있다. 모더나의 최신 연구 결과가 지난 2월 발표됐을 때 논문 본문에서는 ‘백신’이라는 단어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해당 용어는 각주에서만 등장했으며, 과거 연구 논문이나 특허 제목을 인용하는 맥락에서 제한적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변화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장관의 정책 기조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들은 mRNA 백신을 대중적 우려의 대상으로 만들고, 보급을 지연시키며, 기업 차원에서 그 가치를 낮추고, 이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주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모더나의 전략 역시 일정 부분 효과를 거두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적어도 현재까지 미국 정부는 이 회사의 ‘암 백신’, 아니 ‘개별 맞춤형 신항원 치료’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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