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서 AI로 선회…SES AI의 승부수는 통할까
미국 배터리 기업 SES AI는 전기차 시장 둔화와 서구 배터리 산업의 구조적 한계 속에서 AI 기반 소재 발굴로 사업 전략을 전환한 후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에 본사를 둔 배터리 기업 SES AI가 10여 년간 이어온 배터리 제조 중심 사업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 기반 소재 발굴로 전략 전환에 나섰다.
치차오 후(Qichao Hu) SES AI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배터리 산업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며 사업 전환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그는 “서구의 배터리 기업은 이미 상당수가 시장에서 퇴출됐거나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지속가능한 사업 모델을 구축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SES AI는 한때 전기차(EV) 등 대형 산업을 겨냥해 차세대 리튬 금속 배터리 양산을 추진했지만, 현재는 드론 등 소규모 시장에 제한적으로 제품을 공급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신 AI 기반 배터리 소재 발굴 플랫폼을 핵심 사업으로 삼고, 이를 다른 기업에 라이선스하거나 직접 소재를 개발해 판매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최근 수개월 사이 미국 내 주요 전기차 배터리 기업 일부가 사업을 중단하는 등 업계 재편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SES AI와 같은 전략 변화는 향후 에너지 산업의 지정학적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SES AI의 기술적 뿌리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시작됐다. 후 CEO가 대학원 시절 수행한 연구는 고온 환경의 석유·가스 탐사용 센서에 적용할 배터리 개발이 목적이었다. 지하 깊은 곳에서 120℃ 이상의 고온을 견디면서도 장시간 작동할 수 있는 배터리가 요구됐기 때문이다.
그가 속한 연구팀은 리튬 금속을 음극으로, 폴리머를 전해질로 사용하는 고체 폴리머 배터리를 개발했다.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 대비 에너지 밀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인 이 기술은 2012년 MIT에서 분사한 스타트업 ‘솔리드 에너지(Solid Energy)’의 기반이 됐으며, 이 회사는 이후 SES AI로 사명을 변경했다.
SES AI는 초기에는 석유 탐사 시장을 겨냥했으나 시장 규모가 제한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전기차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후 매사추세츠와 중국 상하이에 생산 시설을 구축하고, 현대차, 제너럴 모터스, 혼다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협력해 차세대 배터리 개발을 추진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정책 지원도 축소되면서 사업 환경은 급격히 악화됐다. 특히 전기차 세액 공제 종료 등으로 대형 전기차 시장이 위축되자, SES AI는 새로운 돌파구 모색에 나서게 됐다.
이 회사가 핵심 성장 동력으로 내세운 AI 플랫폼 ‘몰레큘러 유니버스(Molecular Universe)’는 배터리 소재를 탐색·설계하는 시스템이다. SES AI는 이 플랫폼을 통해 신규 소재를 발굴하고 이를 배터리 기업에 공급하거나 기술 라이선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회사에 따르면 현재까지 6종의 신규 전해질 소재를 발굴했으며, 이 가운데 하나는 실리콘 음극 배터리의 수명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첨가제로 알려졌다. 실리콘 음극은 충·방전 과정에서 팽창이 심해 성능 저하를 유발하는 문제가 있는데, 기존에 사용되는 첨가제는 고온에서 분해되며 가스를 발생시키는 한계가 있다. SES AI는 이러한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대체 물질을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후 CEO는 “실제 배터리를 직접 생산하지 않음으로써 더 빠르게 확장하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며 “AI 모델 자체보다 축적된 데이터와 배터리 분야 전문성이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AI 기반 소재 발굴이 단기간 내 산업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신중한 시각도 존재한다. 에너지 전문 투자사 볼타 에너지 테크놀로지스(Volta Energy Technologies)의 카라 로드비(Kara Rodby) 기술 책임자는 “신소재 개발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배터리 산업 발전의 결정적 요인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하기 어렵다”며 “현재로서는 새로운 소재 발견만으로 산업의 판도를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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