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원자로는 핵폐기물 처리 문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차세대 원자로의 등장으로 폐기물의 종류와 특성이 다양해지면 사용후핵연료 관리 전략 역시 한층 복잡해질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방식은 다양하면서도 창의적이다. 예를 들어 핵폐기물을 물이 담긴 저장 수조에 담그거나, 강철로 감싸거나, 수백 미터 깊이의 지하에 매설하는 방식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방법들은 원자력 산업이 매년 전 세계 전력의 약 10%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약 1만 톤의 사용후핵연료 폐기물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데 활용된다. 그러나 새로운 원자로 설계가 등장하면서 핵폐기물 관리에도 새로운 변수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원자력 발전소에서 운영하는 원자로의 기본 구조는 대부분 비슷하다. 대체로 저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고 물로 냉각하며 대형 중앙집중식 발전소에 설치된 거대한 설비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향후 몇 년 내에 다양한 방식의 새로운 원자로들이 가동된다면, 새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도록 기존 시스템을 일부 조정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미국의 과학자 단체 UCS(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의 에드윈 라이먼(Edwin Lyman) 원자력발전 안전 책임자는 “새로운 원자로들은 작동 방식도, 사용하는 연료 유형도 다양하다”며 “그런 원자로들이 도입됐을 때 폐기물 관리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는 아직 확실히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핵폐기물 처리의 기본 지침

핵폐기물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병원이나 연구소에서 나온 오염된 보호 장비와 같은 ‘저준위 폐기물’이고, 다른 하나는 더 엄격한 관리가 필요한 ‘고준위 폐기물’이다.

핵폐기물의 대부분은 저준위 폐기물이다. 이러한 저준위 폐기물은 현장에서 보관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며 방사능 농도가 자연적으로 충분히 감소하면 추가적인 안전 조치를 거쳐 일반 쓰레기처럼 처리할 수 있다. 반면 고준위 폐기물은 방사능이 훨씬 강하고 열도 많이 발생한다. 고준위 폐기물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사용후핵연료인데, 이러한 사용후핵연료는 핵연료에서 핵분열을 일으키며 연쇄반응을 유지해 원자력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물질인 우라늄-235를 비롯한 여러 물질의 혼합체다. 또한 여기에는 원자가 쪼개지면서 에너지를 방출할 때 생기는 부산물로 일부는 방사성을 띠기도 하는 핵분열 생성물도 포함된다.

많은 전문가들은 사용후핵연료를 비롯한 고준위 핵폐기물을 처리할 장기적인 해결책이 ‘지층처분장’이라는 데 동의한다. 지층처분장은 지하 깊숙한 곳에 매우 안전하게 설계된 저장 시설을 말한다. 핀란드는 이러한 지층처분장 건설 계획에서 가장 앞서 있으며, 남서부 해안에 마련한 지층처분장을 올해 가동할 예정이다.

미국은 1980년대에 지층처분장 부지를 지정했지만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진행이 중단된 상태다. 그 결과 현재 미국에서는 사용후핵연료를 가동 중이거나 폐쇄된 원자력 발전소 부지에 보관하고 있다. 원자로에서 꺼낸 연료는 보통 먼저 물속에 담가 냉각하는 방식인 ‘습식 저장’을 거친다. 그 이후에 콘크리트와 강철로 만든 저장 시설에 보관할 수 있는데, 이를 ‘건식 저장’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원자로 설계가 등장하더라도 이러한 기본 지침 자체를 전면 수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원자력 산업을 연구하는 비영리 싱크탱크 원자력혁신연합(Nuclear Innovation Alliance)의 에릭 코스론(Erik Cothron) 연구 및 전략 책임자는 “사용후핵연료를 관리하는 방식은 대부분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면서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식의 변화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원자로에 새로운 설계와 재료가 활용된다면 공학적 해결책이 필요해질 수도 있다. 게다가 원자로 설계가 매우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처리해야 할 폐기물의 종류 또한 다양해질 가능성이 있다.

특이한 폐기물

새로운 원자로 중 일부는 기존 원자로들과 형태가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에 이러한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는 현재와 거의 같은 방식으로 관리될 것이다. 그러나 냉각재와 연료로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는 원자로들도 있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어배너-섐페인 캠퍼스의 사이드 바하우딘 알람(Syed Bahauddin Alam) 원자력, 플라스마, 방사선 공학과 조교수는 “특이한 재료를 사용하면 특이한 폐기물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차세대 원자로는 고준위 폐기물로 처리해야 할 폐기물의 양을 늘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삼중 구조 등방성(TRISO)’이라는 입자 연료를 사용하는 원자로가 있다. TRISO는 우라늄 핵을 여러 겹의 보호층으로 감싼 다음, 이를 다시 흑연 껍질 속에 넣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흑연 껍질은 사용후핵연료와 함께 처리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기존 연료보다 폐기물의 부피가 훨씬 커질 수 있다.

원자력혁신연합에서 2024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TRISO의 보호층을 분리하는 작업은 현재로서는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든다. 따라서 TRISO는 전체 구조를 하나로 묶어 고준위 폐기물로 처리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원자로 설계 기업 엑스에너지(X-energy)는 TRISO 연료를 사용하는 고온 가스냉각 원자로를 개발하고 있다. 엑스에너지는 이미 미국의 원자로 규제 기관인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 사용후핵연료 처리 계획을 제출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TRISO 연료의 구조는 오히려 폐기물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는데, 보호층 덕분에 습식 저장이 필요 없고 처음부터 건식 저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새로운 유형인 액체 연료 용융염 원자로도 폐기물 양을 증가시킬 수 있다. 용융염 원자로는 대부분의 원자로와 달리 연료를 냉각재와 분리하지 않고, 냉각재 역할을 하는 용융염에 직접 녹인다. 즉, 이 경우에는 전체 용융염 자체가 고준위 폐기물로 처리되어야 한다.

반대로 일부 원자로 설계는 사용후핵연료의 양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중성자를 빠른 상태로 유지해 효율을 높이는 원자로인 ‘고속로’는 연소도가 높아 연료를 더 많이 소모하고 에너지를 더 많이 추출한다. 따라서 고속로의 사용후핵연료는 핵분열 생성물의 농도가 더 높고 열도 더 많이 방출한다. 그리고 이 열은 폐기물 처리 설계에서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녹아서 위험한 부산물을 방출하지 않도록 비교적 낮은 온도로 유지해야 한다. 또한 처분장 내부의 열이 너무 높으면 주변 암석을 손상시킬 수 있다. 미국 에너지부와 NRC에서 근무했던 폴 딕먼(Paul Dickman)은 “처분장에 얼마나 많은 폐기물을 넣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결국 열”이라고 지적했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공공정책 및 글로벌문제 대학원의 앨리슨 맥팔레인(Allison MacFarlane) 원장은 “일부 사용후핵연료는 처분 전에 화학적 처리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러한 처리 과정은 비용뿐 아니라 복잡성도 증가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금속나트륨으로 냉각되는 고속로에서는 냉각재가 연료 내부로 스며들어 피복재와 결합할 수 있다. 이를 분리하는 과정은 까다롭다. 특히 나트륨은 물과 매우 격렬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사용후핵연료는 특수한 처리가 필요하다.

미국의 차세대 원자로 개발 기업 테라파워(TerraPower)의 제프리 밀러(Jeffrey Miller) 사업 개발 담당 SVP는 “테라파워의 나트륨 고속로인 ‘나트륨(Natrium)’ 원자로는 이러한 문제를 안전하게 관리하도록 설계되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자로는 3월 초 NRC로부터 건설 허가를 받았다. 테라파워는 사용후핵연료를 습식 저장 수조에 넣기 전에 질소를 넣어 나트륨을 제거하는 방식을 계획하고 있다.

위치 문제

사용하는 재료와 상관없이 원자로의 크기나 설치 위치가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폐기물 관리가 복잡해질 수 있다.

일부 새로운 원자로는 기본적으로 현재의 대형 원자로를 축소한 형태다. 이러한 소형 모듈 원자로(SMR)와 마이크로원자로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은 기존 원자로의 폐기물과 유사한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처럼 폐기물을 발전소 부지에 보관하는 경우, 수많은 소형 부지 각각에 자체 폐기물을 보관하는 방식은 비효율적일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은 마이크로원자로와 그로부터 발생하는 폐기물을 하나의 중앙 시설, 즉 원자로가 제조되는 장소로 되돌려 보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맥팔레인 원장은 “기업들이 폐기물 문제를 설계 단계에서부터 신중히 고려하고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발생 폐기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맥팔레인 원장은 또한 “현재까지 폐기물 계획은 주로 연구와 모델링 기반이었으므로 원자로가 실제로 가동된 이후에야 상황이 명확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새로운 원자로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폐기물이 얼마나, 어떤 형태로 발생할지에 대해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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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년 03월 20일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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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일: 2026년 03월 20일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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