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을 위한 약물까지 허용… ‘인핸스드 게임’ 논란 확산
약물과 기술 도핑까지 허용한 인핸스드 게임은 기록 경쟁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인간을 ‘강화’하려는 시대의 흐름과 그 위험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5월 24일(현지시간) 총 42명의 선수가 참가한 다소 이례적인 스포츠 대회가 열렸다. 첫 개최를 맞는 ‘인핸스드 게임(Enhanced Games)’으로, 참가자에게 경기력 향상을 위한 약물 사용이 허용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주최 측은 “이 대회의 목표는 인간 능력의 한계를 확장하는 것”이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약물만 의료진의 감독 아래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계 기록 경신을 기대하고 있으며, 이를 달성한 선수에게는 상당한 상금이 지급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당초 기대와 달리, 이번 대회에서 세계 기록을 넘어서는 기록을 세운 선수는 그리스 수영 선수 크리스티안 골로메예프(Kristian Gkolomeev)가 유일했다. 그는 남자 자유형 50m 경기에서 기존 기록을 뛰어넘는 기록을 작성했다.
이 대회는 예상대로 호기심과 기대, 비판이 뒤섞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지금 시대의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사례로도 읽힌다. 최근에는 펩타이드 등 각종 성능 향상 물질과 외모·건강을 극단적으로 관리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더 마르고 더 오래 살고 더 ‘완벽한 아이’를 갖는 것이 하나의 목표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강화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퍼지고 있다.
대회는 수영과 육상, 역도, 스트롱맨 등 네 종목으로 진행됐다. 참가 선수들 가운데에는 이미 국가 기록이나 세계 기록을 보유한 이들도 있고, 올림픽 메달리스트도 포함돼 있다. 선수들은 일정 수준의 급여를 받으며 총 2,500만 달러(약 380억 원) 규모의 상금을 놓고 경쟁했다. 이 거액의 상금은 적지 않은 선수들에게 강한 유인으로 작용했다.
또 다른 유인은 경기력 향상 약물을 공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프로 스포츠에서는 1,000분의 1초, 몇 밀리미터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 선수들은 이미 뛰어난 유전적 조건을 갖춘 경우가 많고, 여기에 식단과 훈련, 회복까지 철저히 관리하며 특수 장비까지 동원해 기록 단축에 나선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포츠에는 분명한 선이 존재한다.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스포츠에서 약물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활동하는 국제기구로, 국제 대회에서 금지된 ‘비승인 물질’ 목록을 관리하고 있다. 여기에는 근육을 키우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부터 테스토스테론 생성을 촉진하거나 혈액의 산소 운반 능력을 높이는 호르몬, 근육 성장과 회복을 돕는 성장인자 등 다양한 물질이 포함돼 있다.
문제는 이 가운데 일부가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FDA 승인을 받은 약물이라는 점이다. 인핸스드 게임 규정에 따르면 이러한 약물은 선수들이 사용할 수 있다.
다만 FDA 승인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고혈압과 여드름, 우울증, 간 종양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으며, 성장호르몬 역시 근력 약화나 시력 이상을 일으키고 심한 경우 당뇨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른바 ‘기술 도핑’도 이 대회에서는 허용됐다. 더 나은 장비를 활용해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실제로 지난해 참가 선수인 수영선수 크리스티안 그콜로메예프(Kristian Gkolomeev)는 폴리우레탄 소재의 ‘슈퍼 수영복’을 입고 50미터 자유형 기록 측정에서 신기록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수영복은 2008년과 2009년 기록이 쏟아지자 국제수영연맹이 ‘불공정한 이점’을 이유로 올림픽 사용을 금지한 장비다. 그러나 인핸스드 게임에서는 ‘불공정’이라는 기준 자체가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듯하다.
대회를 둘러싼 우려도 적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고 위험한 약물 사용을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이들은 이를 ‘광대 쇼’에 비유하며 금지 약물 없이 훈련해 온 선수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지적했다. 세바스찬 코(Sebastian Coe) 세계육상연맹 회장은 참가 선수들을 두고 “어리석다”고 비판했고, 국제 수영 경기를 관할하는 세계수영연맹은 인핸스드 게임 참가 선수들의 자사 대회 출전을 금지했다.
그럼에도 이 대회와 참가 선수들은 큰 주목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경기력 향상 약물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회를 주최하는 기업 인핸스드는 온라인 스토어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나는 강화됐다(I am Enhanced)’는 문구가 적힌 52달러짜리(약 7만 9,000원) 티셔츠를 판매하고 있다. 또한 ‘회복과 활력, 장수에 도움을 준다’고 홍보하는 펩타이드 등 처방 의약품도 함께 판매된다. 이 가운데 하나는 1997년 FDA가 성장 장애 아동 치료를 위해 승인한 성장호르몬이다. 다만 인핸스드 웹사이트에서 판매되는 복합제 형태의 제품은 FDA 승인을 받지 않았으며, 장수나 숙면, 전반적인 웰빙과 활력 개선을 내세워 판매되고 있다. 어디까지나 마케팅 문구일 뿐, 해당 용도로 승인된 약물은 아니다.
이 같은 흐름은 지금 시대의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아직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약물은 없지만, 항노화 치료를 향한 관심과 투자는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나이 드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조차 점점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필터와 시술이 이미 일상화됐고, ‘죽음은 피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 역시 확산되고 있다.
자기 몸을 대상으로 한 실험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인간의 몸과 생물학적 기능을 기술·과학·데이터 등을 활용해 스스로 개선하거나 최적화하려는 행위를 뜻하는 ‘바이오해킹’은 2025년 콜린스 사전 ‘올해의 단어’ 후보에 오를 정도로 대중화됐다. 안전성과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펩타이드 사용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검증되지 않은 치료를 내세우는 장수 클리닉도 늘고 있다. 몬태나주를 비롯한 일부 미국 주에서는 승인되지 않은 ‘치료법’에 대한 접근성까지 완화하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나아가 일부 기업은 예비 부모에게 ‘더 오래 살 가능성이 높은’ 미래 자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옵션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른바 배아 단계에서부터 ‘최적화’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환경에서 인핸스드 게임은 더 이상 급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성능을 끌어올리려는 시대적 흐름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에 가깝다. 이제는 ‘인간 그대로’인 상태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 점점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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